[‘규슈 올레 여행’] 콧잔등에 땀 맺힐 즈음 ‘차 평원’이 펼쳐졌다

▲ 규슈 올레 야메 코스 출발지에서 3.4㎞ 지점부터 광활한 '야메 중앙 대다원'이 펼쳐진다. 차밭을 가로지르는 두 갈래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잠시 코스를 일탈해 북쪽으로 걸어보자. 봉긋 솟은 언덕 전망대에 서서 광활한 차밭을 눈에 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규슈 올레 야메 코스 출발지에서 3.4㎞ 지점부터 광활한 ‘야메 중앙 대다원’이 펼쳐진다. 차밭을 가로지르는 두 갈래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잠시 코스를 일탈해 북쪽으로 걸어보자. 봉긋 솟은 언덕 전망대에 서서 광활한 차밭을 눈에 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좋게 말해 ‘언론고시생’, 툭 까놓고 ‘장기 백수’였던 시절. 낙방의 고배를 마실 때면 제주 올레길을 무작정 걸었다.

애써 여행 책자나 스마트폰을 뒤져보지 않아도 길 곳곳에 놓인 조랑말 모양의 ‘간세(‘게으름’의 제주 방언. 말의 머리가 향하는 곳이 정방향이다)’만 봐도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어, 계획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이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초반 3㎞ 반복되는 오르막길
산으로 막힌 갑갑한 풍경…

제주 올레 그리워질 무렵
야메 올레의 ‘하이라이트’
중앙 대다원 넓게 펼쳐져
31만 평 차 밭을 품에 안고
4시간 느리게, 느리게 걷기

삶이 어지러운 건 일본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맞춰지지 않는 생활의 퍼즐을 뒤로 한 채, 오로지 ‘걷기’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올레길이 일본에도 생기고 있다.

걷기 좋은 이 계절, 일본의 자연을 바라보며 정성스러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규슈 올레’에 다녀왔다.

■ 차 밭에서 호연지기 기르다

일본 친구에게 “야메에 간다”고 했더니, 대번 “오챠노 야메!(차의 야메)”라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차(茶)밭을 끼고 걷는 올레길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산뜻했다.

규슈 총 17개의 코스 중 13번째로 개장한 야메 코스는 길이 11㎞에 난이도는 초급인 길이다. 출발지인 후쿠오카 현 야메 시 야마노이 공원에서 종착지인 이와토산 역사문화교류관까지 걸어서 서너 시간 걸린다.

이런! 당일 비 올 확률이 무려 80%였다. 기껏 멀리까지 왔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올레길에 나서지 못할까 걱정됐다. 간절한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하늘은 비의 꿉꿉한 기운을 걷어가고 트래킹 하기 딱 좋은 선선함만 남겨줬다. “올레!” 승리의 외침과 함께 첫걸음을 내디뎠다.
초반 3㎞ 구간에서 오르막길이 반복돼 야메 코스의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산에 가로막힌 풍경 탓에 그저 동네 뒷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제주 올레가 생각났다면 너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가파른 길을 걷다 보니 콧방울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결국 숲 속에 널브러진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를 만들었다.

 

 

1시간가량 ‘등산’을 하니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야메 중앙 대다원’이다. 31만 평에 이르는 차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완만한 내리막길과 평탄한 길이 시작됐다.

야메 코스의 정수는 여기에 있다. ‘밭’이라는 단어론 이곳을 표현하기엔 너무 소박했다. ‘차 평원’쯤 되겠다. 산등성이를 경계로 앞에도, 뒤에도 차 재배지가 펼쳐져 있다. 인적 드문 오솔길에 호젓하게 서 있노라면, 차밭을 모두 빌린 것 같은 호연지기도 느낄 수 있다.

올레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은 표준이다. 파랑은 정방향, 빨강은 역방향을 뜻한다. 간세나 화살 표지를 세울 수 없는 곳에는 리본으로 길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곳에선 잠시 올레의 규칙에서 자유로웠으면 했다.

사람 인(人)자를 형상화한 규슈 올레의 화살 표지.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올레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치넨 절’ 방면 내리막길로 가야 하지만 표지를 무시하고 북쪽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차밭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언덕에 있기 때문이다. 경로를 이탈해도 괜찮다. 다시 돌아오면 올레길 표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삶도 올레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누구도 “느리다”고 재촉하는 일이 없고, 생각을 비운 채 ‘멍 때리며’ 걸어도 곳곳의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준다면 말이다.

■사케의 온갖 향에 빠지다

장장 네 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차로 10분 거리인 기타야 양조장에서 재밌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타야는 아주 작은 양조장이지만, ‘ IWC(국제와인품평회) 2013’ 사케 부문에서 당당하게 챔피언을 차지한 무림의 고수다. 마침 새 술이 나왔다고 알리는 축제인 ‘사카구라비라키’가 한창이었다. 200엔을 주고 사케 잔을 사면 양조장 안에서 무한정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기타야 양조장에서 200엔을 주고 구입한 사케 잔. 이 잔만 있으면 차가운 술, 데운 술, 병에 담긴 사케까지 무한정 마실 수 있다.

종업원은 분주하게 차가운 술과 데운 술을 담아줬다. 한구석에선 행사 전문 가수가 술꾼들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양조장을 메운 사람들은 작은 술잔을 들고 다니면서 온갖 종류의 사케를 맛봤다.양조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난장판이다”는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림잡아 2천 평은 되는 넓은 양조장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 노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뜻 봐도 술을 많이 마신 중년의 남성이 연신 “고맙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두 돌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아기를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는 부부도 있었다. 주신(酒神) 앞에서는 평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갈한 태도를 고수하는 일본인도 도리가 없나 보다.

정돈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사카구라비라키 기간에 양조장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세계 챔피언의 명성에 걸맞은 사케의 맛은 덤이다.

야메(일본)/글·사진=이혜미 기자 fact@busan.com


교통부산에서 후쿠오카를 갈 때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쾌속선인 ‘비틀’을 타면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3시간 만에 하카타 항에 닿는다. 비틀은 주중 2회, 주말 2회 운항하며, 왕복 23만 원. 문의는 JR규슈고속선 051-469-0778.

시간 여유가 있다면 바다 위에서 1박하는 고려훼리의 ‘뉴카멜리아’를 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매일 오후 10시 30분에 부산에서 출항해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일본에 도착한다. 운항 정보는 고려훼리 홈페이지(www.koreaferry.kr).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야메 코스로 가기 위해서는 하카타 역으로 이동, JR가고시마본선을 타자. 하이누즈카 역에서 호리카와 버스를 타고 우에야마우치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2시간가량 걸린다.

여행 TIP

야메(八女) 시는 후쿠오카 남동부에 위치한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다. 야메는 시즈오카 현의 오카베, 교토의 우지와 함께 일본 3대 교쿠로(옥로)차 산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4시간 동안 올레를 걸었다면 특산품인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어떨까. 관광물산관 토키메키에서 300엔이면 진한 말차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차뿐 아니라 말차 카스텔라, 말차 초콜릿도 판매해 선물용으로 좋다.

통신사에 따라 1일 9천~1만 원(부가세 불포함)에 데이터 로밍 상품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을 여행할 땐 우리나라의 에그와 유사한 ‘포켓와이파이’를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1일 7천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언제 어디서나 LTE급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 인터넷에서 신청한 뒤 김해공항이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의 창구에서 수령한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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