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배운다] ‘세월호’같은 집단 죽음, 진실규명 절대적으로 필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설치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세겨진 타일 추모품. 정대현 기자 jhyun@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설치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세겨진 타일 추모품. 정대현 기자 jhyun@

 

한 개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도 세상은 단순히 개인적인 죽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의료 기술, 사회적 역할에서 주어진 스트레스 등에 다양한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죽음이 던져준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발전 가능한 사회라고 믿는다.

순식간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들은 통절한 반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열차 탈선이 나면 승무원 근로 환경을 주목하고, 가스관 폭파 사건 때는 정부의 안전대책 능력을 질타하고 관련 정책 수립을 요구하듯이.

최근 서울의 지하철 화장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경찰에 붙들린 범인이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여성혐오’가 중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혐오 의식이 남성 전반에 걸쳐 폭넓게 잠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도 이 죽음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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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상징되는 2014년 4월의 집단 죽음은 전형적인 ‘사회적 죽음’이다. 한 사회가 수많은 생명을 살리겠다는 ‘적극적 의지(그중 몇 분은 예외)’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바람에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기에 필자는 대표적인 사회적 살인 내지 사회적 죽음이라고 본다. 정황상,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경이었음에도 아이들이 죽도록 내버려둔(가끔 고의성이 있지 않았는지를 의심하는) 이유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집단적 죽음에서 ‘진실 규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기는커녕 온갖 풍문을 만들어내면서 집단 죽음의 사회적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

최근 어떤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팔순의 여인은 시간만 나면 ‘대한민국 헌법’을 읽는다. 이 세상의 모호한 것은 모두 ‘헌법이 담고 있는 가치’로 귀결된다. 드라마는 우리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사회적 죽음에는 진실 규명이 가장 우선이다. 그다음에 피해자와 유가족에 안겨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사회적 책무로 남아 있다. 이를 외면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싫다.

 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했던 여성 살해 사건의 희생자 추모제가 20일 오후 도시철도 부산대역 앞에서 열려 지나는 시민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역 앞에 붙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했던 여성 살해 사건의 희생자 추모제가 20일 오후 도시철도 부산대역 앞에서 열려 지나는 시민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역 앞에 붙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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