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로 좁고 ‘불쏘시개 외장재’ 건물 수두룩

지난 21일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도 역시 인재였다. 이용객 안전과 맞바꾼 값싼 건물 설계,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은 불법 주정차 행렬, 비상시 무용지물이었던 비상구 등 외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래된 고층 건물이 많은 부산에서도 유사한 참사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가연성 외벽 유독가스
화재 취약한 필로티 구조
제천 참사 피해 더 키워

소방차 진입 막는 불법주차
부산, 심각한 위협 인식해야

■불쏘시개와 풀무가 된 건물

이번 참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은 외장재로 ‘드라이비트’를 썼다. ‘빨리 마른다’는 의미의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인 뒤 석고나 시멘트 등을 덧붙여 마감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드라이비트는 스티로폼이 주재료라 불연성 자재에 비해 가격이 절반, 심지어 3분의 1수준으로 저렴하다. 단열성이 뛰어나고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드라이비트가 가연성이 뛰어나고 연소 시 많은 양의 유독가스를 내뿜는다는 데 있다. 2015년 13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때도 드라이비트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2010년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때는 알루미늄 복합패널이 쓰였는데 드라이비트와 유사한 가연성 외장재였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전국의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 2315동을 전수조사한 결과 드라이비트, 알루미늄 복합패널 등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곳은 135동이었다. 동아대 기성훈(건축공학과) 교수는 “경제적인 이유로 국내 건축물들은 가연성 외장재를 많이 쓰는데 이는 화재로 인한 대형 참사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며 “선진국의 경우 층수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건축물이 불에 강한 무기질 소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필로티 구조(1층 기둥이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건축 형식)의 건물은 화재의 ‘풀무’ 역할을 한다. 동의대 류상일(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제천 스포츠센터의 뻥 뚫려 있는 1층 필로티 주차장 공간이 화재 때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땅값이 비싼 부산은 필로티 건축물이 유독 많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영일 의원실에 따르면 부산은 도시형 생활주택 중에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비율이 96%로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 하지만 부산시는 관련 통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 관계자는 “드라이비트는 마감재라 통계를 내기 어렵고 행정력이 부족하다”며 “필로티 건축물은 내년께 현황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꽉 막힌 진입로와 비상구

소방당국은 이번 제천 화재의 인명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로 6m 폭의 건물 주변 진입로 양쪽에 있던 불법 주차 차량들을 꼽았다. 굴절 사다리차 등 인명 구조와 직결된 소방장비가 불법 주차 차량들 탓에 500m를 우회해 진입했기 때문에 초동 대처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도로는 좁고 차량은 많은 부산의 경우 불법 주차 문제는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24일 부산소방본부에 따르면 현재 부산지역 소방차 진입곤란구역(소방 차량의 진입이 곤란한 구간이 100m 이상 이어지는 곳)은 206곳이다. 이 가운데 133곳(64.5%)이 상습주차 차량들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목욕탕 내부 구조와 목욕 용품 보관대로 가려져 있던 비상구 역시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된다. 류상일 교수는 “목욕탕과 노래방 등 많은 다중이용업소가 H형이나 S형처럼 복잡한 내부 구조를 갖고 있어 화재 발생시 사람들이 뒤엉킬 우려가 높다”고 분석했다.

부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부산지역 건축물 불법행위 중 비상구에 대한 신고 건수는 모두 396건이었다. 방화문 자동 닫힘장치 미비가 245건(61.8%)으로 가장 많았고, 고임장치 문제(방화문을 상시 개방해 놓는 행위)가 90건(22.7%)으로 뒤를 이었다. 계단 통로에 장애물을 놔두거나(13건) 비상구를 아예 폐쇄해버린 경우(4건)도 적발됐다.

■관련 법만 개정하면 뭣하나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은 강화됐다.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이후 2012년에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에 대해서 가연성 외장재를 쓸 수 없도록 했고,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이후에는 이 규정이 6층으로 강화됐다.

새로 건물을 지을 땐 이 조항을 엄격히 지켜야하지만, 예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소급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제천 스포츠센터 역시 개정된 건축법이 시행되기 5개월 전 건축허가를 신청하면서 불연성 외장재 관련 조항을 피해갔다.

부경대 박외철(소방공학과) 교수는 “소급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불연성 재질로 외장재를 바꾸는 건축주들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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