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않는지, 언제까지고 여기 앉아 지켜볼 겁니다”

▲ 27일 설치 1주년을 맞은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앞 평화의 소녀상 . 이날 ‘해외소녀상 관련 이면합의’ 내용이 담긴 한·일 위안부 합의 TF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나는 소녀상입니다. 지난해 12월 30일 동구청 위력에 쓰레기 선별장으로 끌려갔다 돌아와 부산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바로 그 소녀상입니다. 딱, 1년 만이네요.

1년 동안 많은 분들이 다가와 행여 추울까 목도리를 둘러주곤 하셨지요. 내 생에 가장 큰 사치를 해본 것 같아요. 낮에는 빨간 목도리 저녁에는 노란 목도리, 형형 색깔의 모자를 써보기도 했죠. 과자와 우유 등 간식도 늘 끊이지 않았습니다.

딱 1년 만이네요
색색의 모자·목도리·과자
큰 사치를 해본 것 같아요

올 한 해 소녀상이
16개 더 세워졌다네요

국가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되물을 겁니다

내가 세워진 뒤 전국 각지의 소녀상 건립도 이어졌어요. 올 한 해만 16개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경남 진주부터 경기도 평택과 양평, 강원도 춘천과 속초,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여수까지 말이죠.

지난해 12월 28일 동구청 행정집행으로 강제 철거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견디기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기도 했고, 내 등에 자전거를 묶어놓기도 했으니까요. 일본 측도 꾸준히 반발을 해왔죠. 일본 언론들은 부산일본영사관 자체의 위치를 옮긴다, 연락소로 그 지위를 강등한다 등등의 외교 대응책을 제시하기도 했어요. 꾸준히 외면하고, 회피하고 부인해 왔듯이요.

지난 3월 5일 평화의 소녀상을 반대하는 한 시민이 벌인 ‘자전거 테러’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위안부로 끌려가 한국에 돌아온 날. 가까운 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않았어요.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녀상 제막은 첫 걸음이었어요. 지난 5월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시의회 상임위에서 소녀상을 보호할 조례안이 처리가 되지 않도록 요청하기도 했죠. 4개월 동안 미뤄진 조례는 결국 통과됐지만 조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이곳에서 기려질지 방치될 것인지는 온전히 시민의 몫에 달린 것 같아요.

지난 1월 20일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이후 대선 후보들의 발길이 소녀상으로 이어졌다.
아마 이런 것들이 가장 두려웠을 겁니다. 누군가를 기리는 따뜻한 마음, 올해 피어난 수백만 개의 촛불이 그랬듯 선의와 정의를 향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세상이 바뀌기도 하거든요.

누군가가 이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묻는 다면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려고 합니다. 생떼같은 자국의 딸들을 일본 정부로 보냈던 조선, 공개 부분과 비공개 부분으로 나눠 국민에게는 말할 수 없는 내용으로 외교적 합의를 이끌어낸 정부. 내가 끊임없이 되묻지 않으면 자꾸만 잊혀져 버려서요.

‘비공개 위안부 합의’에는 일본이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설득을 요청하고 한국은 해외 소녀상 지원을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있었다죠. 보세요, 누군가가 묻지 않으면 자꾸 까먹는다니까요.

그래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는 여기 영사관 앞에 앉아서 지켜볼 겁니다. 피해자로부터 출발하는 그런 국가를 꿈꾸면서요.

조소희·김준용 기자 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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