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길트기 훈련 동승기, 소방로 점령한 차량들.. 850m 가는 데 28분 걸려

부산 남부소방서와 남구청이 합동으로 소방통로 확보 훈련을 벌인 27일 오전 남구 대연4동 주택가 도로에서 소방차가 불법 주차된 차에 막혀 멈춰서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27일 오전 10시께 부산 남구의 한 골목길 입구. 본보 취재진은 부산 남부소방서의 소방 펌프차(소방수를 뿌리는 차량)에 올랐다. 소방차 길트기 훈련에 나선 골목길은 양쪽으로 단독주택과 빌라가 줄지어 있는 오르막이라 차량 이동이 쉽지 않았다.

너비 2.5m, 길이 7m의 펌프차가 골목길에 진입하자마자 길 한쪽으로 불법 주차를 한 승합차가 길을 가로막았다. 가까스로 차량을 피했지만 50m도 지나지 않아 길 양쪽의 불법 주정차 차량들에 또 막혔다. 차량들이 이동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황. 펌프차는 어쩔 수 없이 사이렌을 울렸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하나둘씩 골목으로 나왔다. 차주들은 허겁지겁 차를 빼면서 골목길은 소란스러워졌다.

너비 6m도 안 되는 골목길
양쪽 다 빽빽이 불법 주차
사이렌 울려도 차주 무소식
‘골든타임 5분’ 어느새 훌쩍

다행히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피해 펌프차는 골목길을 빠져나왔지만, 화재 발생 후 최적 대응시간(골든타임)인 5분에 임박하자 소방관들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펌프차를 운전한 남부소방서 홍창호 소방장은 “소방서가 근처라도 이렇게 불법 주정차 차량이 많으면 골든타임 안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부산 남부소방서와 남구청이 합동으로 소방통로확보 훈련을 벌인 27일 오전 남구 대연4동 석포성당 인근 주택가 도로에서 소방차가 불법 주차된 차들로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골목길은 더 좁아졌다. 너비가 6m도 되지 않는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홍 소방장은 양쪽 사이드미러를 연신 살펴보며 펌프차의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며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홍 소방장의 앞길을 다시 막은 것은 전봇대 옆에 세워진 불법 주정차 차량 2대였다. 또 한 번 사이렌을 계속 울렸지만 승용차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홍 소방장은 차량을 피해 빠져나와야만 했다. 10m를 이동하는 데만 골든타임의 절반이 넘는 3분을 속절없이 흘려보냈다.

이날 훈련구간인 850m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28분. 같은 구간을 본보 취재진이 직접 걸어서 걸린 13분보다 배 이상 길었다. 차라리 걸어서 불을 끄러 가는 것이 나은 상황이었다. 실제 펌프차가 진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를 들고 불이 난 곳까지 뛰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부산 남부소방서와 남구청이 합동으로 소방통로확보 훈련을 벌인 27일 오전 남구 대연4동 석포성당 인근 주택가 도로에서 소방차가 불법 주차된 차들로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현재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화재 등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방차들이 주정차된 차량들을 뚫고 지나가면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소방관 개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29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 따른 것이다.

현행 소방기본법상 긴급 상황에서 소방자동차의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정차 차량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출동 소방관들은 해당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를 해 올 경우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대개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우회한다. 부산소방본부 법무수사계 한진욱 조정관은 “시민들의 안전을 더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강호 기자 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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