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고층 건물에 양지 빼앗긴 온천천.. ‘이게 뭐야’

“이대로 가면 머잖아 온천천의 겨울은 ‘음지의 완전정복’이 이뤄지고 말 것이다.”

최근 지인의 페이스북에 ‘양지를 빼앗겨버린 온천천’이란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글의 일부다.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유공간인 온천천이 주변의 고층 아파트로 인해 음지로 변해간다’며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고층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한 장의 사진도 함께였다. 지인은 “수년 전까지 온천천 일대는 경관지구였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건축의 높이를 제한했지만, 이게 어느 순간 해제돼 버렸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의 글·사진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음지로 변해가는 온천천을 너나없이 안타까워했다.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글이 기자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다. 온천천 주변의 모습은 지인의 말 그대로 ‘아파트 숲’의 경쟁지였다. 2~3년 전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인근, 대우푸르지오아파트 맞은편으로 엇비슷하게 래미안장전아파트가 들어서 온천천을 향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아래 온천장역으로 향하는 길섶에서 솟대처럼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바로 장전삼정그린코아 더 베스트 건물이다. 근처엔 SK허브올리브, 벽산아스타가 마치 도열하듯 서 있다. 가히 위압적이다.

연안교 근처 왼쪽으로 경동리인타워 등이 가림막에 둘러싸여 한참 공사 중이다.
세병교 근처에도 오른쪽으로 일동미라주, 온천천쌍용예가, 동원료얄듀크가 장막처럼 펼쳐져 있다. 이쯤 되면 부산의 자랑 온천천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이미 들어선 고층 아파트의 이름을 되뇌는 것조차 힘들다. 온천천은 어느 순간 아파트에 가려 도심(주변 도시공간)과 단절돼 버렸다. 연안교 근처 왼쪽으로는 경동리인타워가 가림막에 둘러싸여 한참 공사 중이다. 연산교 앞엔 부산더샾파크시티가 아파트 숲을 이루며 솟아 있다. 고층 건물은 끝없이 펼쳐진다. 이미 ‘온천천의 24시’는 응달에 갇혀버렸다.

연안교 근처 왼쪽으로 경동리인타워 등이 가림막에 둘러싸여 한참 공사 중이다.

비단 온천천 뿐이겠는가? 수영강, 해운대, 광안리, 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주변…. 바다, 강, 산을 품은 삼포지향(三抱之鄕) 도시 부산이 온통 아파트로 바뀌는 마당에 온천천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가가건축사사무소 안용대 건축가는 말한다. “환경이 좋아지면서 개발 욕구가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공공공간을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고.

현재 부산의 경관지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1990년 중반 규제 완화 차원에서 미관 심의제도가 폐지되면서 최소한의 심의장치들마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용도만 맞으면 대부분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관 보호는 먼 얘기가 된 것이다.

비단 경관지구뿐이겠는가? ‘새로운 해양 관광시대’라는 미명 아래, 어느 순간 부산지역 해안가를 대상으로 하는 ‘해안경관 고도 제한 규제’도 완화돼 왔다.

외국의 경우를 보자. 영국은 런던의 템스강 변엔 경관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건물에 대해선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프랑스 센강 주변 정돈된 스카이라인도 이를 기반으로 한다. 지난 2004년 경관법을 제정한 일본 역시 자치단체 차원에서 엄격히 하천을 관리한다.

물질적 욕망만 키우는 도시를 한없이 만들 순 없다. 더 늦기 전에 도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처절하게 성찰해야 한다. ‘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감을 느끼는가’ ‘도시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도시가 진정, 행복한 도시인가’를 곱씹어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게 도시에 대한 자기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행복한 도시는 건설과 토목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눈앞의 이익에 우리의 미래를 팔지 않아야 한다.

이제라도 하천 주변이 고밀도 고층아파트 위주로 개발되는 것을 억제하는 도시정책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경관상으로 중요한 하천주변부지를 시에서 매입해 공공용지로 만든다든지, 도심 속 공공용지를 하천 주변 사유지와 교환해 이곳에 공공시설을 배치함으로써 지속해서 공공의 공간으로 남겨 놓는 방법도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도로나 시설, 건물 우선이 아니라 하천 중심에서 공간구조를 재편하는 생각의 전환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하천은 물이 가진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도시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물은 사람들에게 원초적으로 친근하다. 고향과 같은 존재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은 늘 그립다. 도심 속 하천의 풍경을 잘 살려낸 도시가 그래서 더 그립다. 제발 부산의 ‘엄지 척’ 온천천이 부디 ‘음지 척’ 온천천이 되지 않기를.

정달식 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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