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놓치는 바람에 ‘형제복지원’ 끌려가 물구나무 서서 맞고…

정민준(가명·46) 씨는 실낱 같은 확률에 희망을 걸었다. 1985년 8월 어느날 엄마 손을 잠깐 놓치는 바람에 빼앗겨 버린 유년의 기록을 찾을 마지막 기회였다. 부산일보 홈페이지를 찾은 그는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넣었다. ‘검색 결과 1985년 7~12월 형제복지원 입소자 명부에 같은 이름이 존재합니다.’ 이 문구를 접한 그의 눈에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슬이 맺혔다.

충남 서천군 살던 정 모 씨
1985년 방학 맞아 놀러왔다
인파 속 엄마 손 놓쳐 끌려가
2년간 형제복지원서 ‘고초’

트라우마 시달려 중학교 중퇴
부랑자 낙인 정상 생활 못 해

12살부터 14살까지 통째로 사라졌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정 씨가 기록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충남 서천군에 살았던 정 씨는 1985년 8월 국민학교 여름방학을 맞아 부산 영주동의 막내이모집에 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에 왔다. 인파로 넘실대는 부산의 한 번화가에서 엄마의 손을 잠깐 놓친 순간 정 씨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곧장 파출소 순경에 의해 발견된 정 씨는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으로 넘겨졌다. 그곳은 12살 소년이 견뎌낼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조장이 “히로시마 타”라고 말하면 소대원 전체가 발 끝을 2층침대에 올리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매질을 당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은 일상 그 자체였다.

정 씨는 “나보다 어린 영유아들도 숱하게 잡혀 왔다”며 “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있던 소년소대와 비슷한 대우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말했다. 5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수용자들이 돌아가면서 돌봤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는지 이후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정 씨가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난 건 1987년 초. 정 씨가 규율을 몇 차례 어기자 간부급 직원들이 형제복지원 내 정신병동으로 옮겼다. 그때 만난 담당의사에게 집 주소를 말했더니 그제서야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할아버지가 연락을 받고 정 씨를 찾으러 온 것이다.

실제 정 씨의 입소 날짜 등이 기록된 1985년 입소자 명부를 확인해 보면 정 씨의 주소는 ‘전북 이리시(현재 익산) 동삼동, 이하 미상’으로 나와 있다. 정 씨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주소가 명부에 적혀 있었다는 걸 이번에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며 “가족들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엉터리 주소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는 그 길로 곧장 고향에 돌아왔으나 2년 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린 정 씨는 중학교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친구들은 형제복지원 부랑자 낙인을 찍어 정 씨를 괴롭혔다. 결국 중학교를 중퇴한 정 씨는 방황을 거듭했다. 그러다 최근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 씨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흔든 끔찍한 기억이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며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기록을 나의 존재로 증명해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

댓글 남기기